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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와 벼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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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은 책을 읽었다. 이전에 여러 책이 그러했지만 이제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구를 표시하고 다 읽은 뒤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다보면 더 효율적으로 정리하는 방법을 체득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포트폴리오 인생의 시작

  • 나는 모든 진리가 3단계를 거친다는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의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에 따르면 진리는 조롱을 먼저 받고 그 다음에 반대를 받다가 마지막으로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 이 책은 기억과 편견의 뒤범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아이디어와 사상의 집합이라 부르고 싶다. 그것은 내 인생의 교훈들이다. 사실 인생의 교훈은 직접 살아나가면서 배우는 것이자 삶에 반영하며 풍성해지는 것이다. 물론 그 교훈이 모두 타당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교훈들을 모으면 신념이 되고, 세상에 대한 인식이 되며, 미래에 대한 희망, 기대, 공포로 자리해 총체적으로 나의 인생철학이 된다.
  • 이 책을 쓰기 위해 유년 시절을 떠올리면서 내가 기억하는 일들이 실제로 벌어졌는지 의아하기까지 했다. 누구나 자신의 개인적 역사를 신화화하기 때문이다. 마술적인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에게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일과 당신이 그것을 기억하는 방식이다.”라고 자서전 서두에서 말했듯이.
  • 이렇게 나의 포트폴리오 인생, 벼룩 생활이 시작되었다. 남의 결제를 받기 위해 어깨 너머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내 인생을 난생처음으로 내 마음대로 주무른다는 것, 내가 아닌 그 어떤 것으로 위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그런 상태를 편안히 여긴다는 것 등이 너무나 좋았다.
  • 물론 회사라는 세계를 떠날 때 아쉬운 것들도 있었다. 큰 집단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 내가 아프거나 부재해도 세상은 여전히 돌아간다는 안도감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포트폴리오 생활에서는 당신이 뭔가를 일으키지 않으면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다. 이런 사실은 당신을 긴장하게 만든다. 그러니 느긋하게 앉아서 그런 긴장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수 있는 회사 생활은 신날 수 밖에 없다.
  • 특히 아쉬운 것은 직장 동료들이었다. 물론 내가 언제나 그들과 의견을 함께하거나 그들을 특별히 좋아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관심사를 함께 나누고, 일을 함께 해나가고 공동체를 함께 형성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삶은 나의 삶과 얽혀 있었다. 나는 그들과 잡담을 나누고 난상토론을 벌이고 세상사를 불평하면서 인생의 여정을 함께 걸어갔다.
  •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딘가에 속하고 싶어 한다. 자유의 차변에는 뭐든 혼자서 해내야 한다는 고독감이 기재되어 있다.
  • 그러나 행복이라는 저울대에서 무게를 달아본다면 틀림없이, 자유가 언제나 이긴다. 나는 앞으로 점점 더 개인의 세계, 선택과 리스크의 세계로 진입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이책을 썼다. 미래의 세계는 항상 편안하지만은 않을 것이므로 리스크 또한 높다. 하지만 현재의 내 삶을 스스로 형성하고 나를 스스로 규제할 수 있는 기회는 거 어느 때보다 많다.

나는 무엇을 배웠나

  • 학교는 가정 외의 더 넓은 사회를 경험하는 최초의 장소이다. 그곳에서 공식적, 비공식적 위계질서, 또래 집단과 동아리, 친척이 아닌 사람이나 자신을 잘 모르고 또 원하지도 않는 사람을 상대하는 방법을 배운다. 학교가 이렇게 중요한 곳이므로 학교생활은 가능한 한 적극적인 경험의 장이 되어야 마땅하다.
  • 물론 학교에서 읽기, 쓰기, 셈하기를 배워야 한다. 그것은 나중에 사회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데 꼭 필요한 기본적인 기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문 뒤에 숨은 인간적 시스템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문을 연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 세월이 흐룬 후에 예비학교는 없어졌지만 그 학교에 다닌 경험은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학생들은 가혹한 대접을 받는 것이 위험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며 또 학교 바깥 사회의 제멋대로인 방식에 미리 적응하는 것이라 세뇌받다시피 했다. 물론 어느 정도 사실임은 인정한다. 하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불평을 하나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교육 방식은 사회의 고난을 견디게 해줄 뿐 그것을 적극적으로 극복해나가게 만들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학교 생활을 하면서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것과 입을 다무는 것이 몸을 지키는 2대 요령이라는 것을 배웠다.
  •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열두 살 혹은 열다섯 살에 학생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길다. 그러니 선택을 가능한 한 미루는 것이 좋다. 학습에 관한 잠재력보다는 표현된 재능을 근거로 학생을 판단하는 교육제도는 대단히 불합리하다. 그것은 학생이 10대 중반에 흥미를 느끼는 과목에 근거해 학생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이다. 이런 결정에는 학생들이 그동안 만난 교사나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학교 시간표 등의 요인이 너무 크게 작용한다.
  • 오늘날의 많은 성숙한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아내와 딸은 공부할 마음이 있을 때 학교에 들어갔다. 그들은 학교를 사회의 장애물 경주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 일반적으로 말해서 오늘날의 연력 제한은 교육에 큰 피해를 입히고 있다. 학생들도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각자 다른 과목을 다른 속도로 배운다는 사실에 만인이 동의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일정한 연력에 실시되는 표준적인 테스트는 일반적인 비교를 불가피하게 만든다. 하지만 사람들은 보통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 아니라 잘난 사람하고 비교하기 때문에 그 결과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참단한 것이 되고 만다.
  • 내가 만약 교육부장관이라면 나는 학생들의 하루 일과를 둘로 나눠 절반은 교실에서 지식과 분석 기술을 배우게 하고, 나머지 절반은 교실 바깥에서 탐구 능력을 기르고 생활 체험을 해보는 각종 프로젝트와 활동에 참여하도록 권장할 것이다. 그러려면 교실과 교실 밖을 담당하는 교사들이 따로 있어야 하겠지만, 탐구 능력을 키우는 일은 지속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공동체의 자원봉사자에게 맡길 수도 있다.
  • 나는 학교가 인생을 미리 실험해보는 안전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시험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재능을 발견하는 곳, 자기의 과제와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을 배우는 곳,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그것이 언제 필요한지를 깨닫는 곳, 인생과 사회에 대한 가치와 신념을 탐구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내가 볼 때 그런 것들이야말로 지식 위주의 교과 과정보다 더욱 매력적인 교육이다.
  •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학생들 모두에게 황금 씨앗을 주어야 한다. 음악가, 기업가, 사회사업가인 어니스트 홀은 세계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가 이런 글을 쓴적이 있다고 말했다. “왜 우리는 학생들에게 본질을 가르치지 않는가? 우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넌 네가 누구인지 아니? 넌 하나의 경이로움이야. 넌 독특한 아이야. 이 세상 어디에도 너하고 똑같이 생긴 아니는 없어”

인터넷 시대의 기업 문화

  • 나는 여기서 비유를 바탕으로 회사의 성격과 운영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 신들을 차용해 나는 <올림포스 경영학>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는 네 명의 신이 등장한다. 카리스마적 리더를 상징하는 제우스, 논리와 질서를 상징하는 아폴로, 팀워크를 상징하는 전쟁의 여신 아테나, 창조적 개인을 상징하는 디오니소스가 그들이다. 각각의 신은 저마다 장점이 있다. 회사는 늘 이 네 유형이 섞여 있는데, 관건은 혼합의 정도다.
  • 소매 업계의 제왕이었던 막스 앤드 스펜서는 2000년에 들어와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고위 경영진을 개편했지만 아무 효과도 없었다. 그러자 외부인인 네덜란드 사람이 영입돼 키를 잡았다. 막스 앤드 스펜서가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소매 영역은 결국 외부인에게 팔려 다른 어떤 것으로 바뀔지 모른다. 이처럼 아폴로형 회사는 자기 자신이라는 상자 밖으로 나가 사색하고 행동하는 법을 모른다.
  • 대기업은 개혁을 해야한다. 자신들을 위해 일하는 살마들을 자본주 못지않게 존중해야하고 또 시장의 법칙이 정의와 윤리보다 아래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대기업의 앞날은 위험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새로운 코끼리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 기업의 규모를 계속 키우면서도 소기업적, 개인적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
    • 창조성과 효율성을 융합하는 것
    • 번영을 이루면서도 사회적으로 용인받는 것
    • 회사의 주주는 물론이고 아이디어의 소유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는 것
  • 앞으로 몇 십 년 동안 새로운 코끼리들이 직면해야 할 문제는 각양각색의 파트너 체인망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다. 게다가 그 체인망을 관리하는 직원들이 저마다 생각과 야망을 가진 개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코끼리 기업의 경영자들이 안고 있는 문제가 얼마나 복잡한지 잘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컨설턴트들은 그렇게 생겨나는 회사 조직이 기분적 구조틀 이상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 틀이 아주 복잡한 네트워크 같은 것이 되리라 전망한다. 동시에 그런 네트워크를 연방(federation)이라 부르고 싶다. 연방은 첫 번째 도전에 대한 나의 처방전으로 조직이 크면서도 작아야 할 필요를 강조한다.
  • 연방주의는 인간적 규모의 공동체를 거대 규모의 복합체와 연결시키는 검증된 방식이다. 하나의 마을, 하나의 시장, 하나의 생태계, 하나의 정치 체제를 갈수록 더 지향하고 있는 세계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거대 규모의 복합체가 필수적이다. 반면 개인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소규모의 조직이나 공동체의 존재도 필요하다. 이 두 필수 사항을 종합하려면 연방주의가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 사실 연방주의는 중앙주의인 동시에 탈중앙주의다. 중앙에서 할 수 있는 기능과 결정은 중앙에 남겨두고 나머지 기능은 지역에서 모두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때 어떤 기능과 결정을 중앙에서 할 것인지 판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앙은 전체를 위해 중앙이 해야 할 일의 일부를 지역에 위임해 분산화를 유도할 수 있다.
  • 연방주의 덕분에 독립적인 기관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다른 조직과 협동할 수 있다.
  • 그러나 연방주의는 각 부분이 상호 의존적일 때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다시말해 각 부분이 개별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커다란 조직의 일부로 행동할 때 더 잘 돌아가는 것이다. 별도의 회사들을 함께 묶어놓은 기업군은 진정한 연방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모였다가 쉽게 흩어진다.
  • 다섯 가지 원칙들 중 가장 중요한 보완성은 권력을 행동 가까운 곳에 놓아주는 것이다. 보완성의 원칙에서 보자면 상급자나 중앙에 있는 사람이 지역의 결정 사항을 훔쳐가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나를 포함해 많은 관리자들이 종종 이 원칙을 위반해 주위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그들의 권한을 빼앗는데 이건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또한 보완성의 원칙은 국가의 권리를 지탱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복수 시민권의 원칙이 있다. 복수 시민권은 한 사람이 소단위와 대단위에 동시에 소속되어서 두 단위 모두에서 소속감을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 성공을 거둔 어느 자선단체장이 말했다. “지역의 일은 지역 사람들이 가장 잘 알아요. 중앙에서 내가 할 일은 그들을 돕는 것이지 그들의 일에 간섭하거나 그 일을 대행하는 것이 아니에요”
  • 사실 코끼리 기업에는 복지부동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은 새로운 것은 시도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자기 앞에 밀려오는 일만 근근이 처리한다. 하지만 연금술사들은 다르다. 그들은 자기 앞에 밀려오는 일을 수동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내고 또 그런 일을 성취하는 커다란 차이를 보여준다. 연금술사에게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이 있다.
  • 첫째, 열정적이다. 내가 만난 모든 연금술사들은 열정을 간직하고 있었다. 기업이든 극단이든 낙후된 공동체의 재개발 사업이든 자신이 하는 일에 엄청난 열정이 있었다. 바로 이런 열정 때문에 그들은 두 번째 특징을 지닌다.
  • 연금술사가 지닌 두 번째 특징은 매달리는 능력이다. 설혹 현실이 자신의 꿈과는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도 그들은 꿈을 놓지 않는다. 이들의 이런 능력은 낭만파 시인 키츠가 말한 ‘부정적 능력(negative capacity)’과도 통한다. “사실이나 이성에 연연해 하지 않으면서 불확실성, 신비, 회의 속에서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능력을 나는 부정적 능력이라고 부른다네.” 키츠에게 부정적 능력은 곧 창조성과 같은 말이다. 모든 현실이 다른 방향을 가리킬 때에도 자신의 꿈에 매달리는 끈기와 오만에 가까운 자신감. 내가 만난 연금술사들은 이런 성향이 있었다. 그러나 부정적 능력도 연금술사의 마지막 특징이 없으면 가치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 세 번째 특징으로 연금술사들은 제 3의 눈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남들과는 다른 눈으로 사물을 본다. … 얼마 후 파리에서 돌아와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고불변의 진리를 하나 발견했어. 그건 주방장들이 하나같이 xxx라는 거야!” 그들은 제3의 눈으로 사태를 명확히 판단하고 주방장 없는 식당을 개업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런던 최초의 수프 주방이 탄생했다.
  • 마지막으로 연금술사들은 실험 정신과 창조성을 강조하는 분위기에서 힘을 얻는 것으로 보인다.
  • 나는 연금술사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중에 그들이 코끼리와 일하면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궁금해졌다. 그들의 정열은 주로 아이디어의 소유라는 사실에서 비롯했다. 그들은 그 아이디어의 법적, 심리적 소유주였다. 그들의 정체성은 주로 그들의 이름을 달고 있는 프로젝트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 아폴로형 기업문화에서 창조성은 질서 정연한 효율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논리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창조성과 실험 정신은 지저분하고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하지만 연방적 구조는 독립 단위로 하여금 전체 조직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혁신적인 행동을 하도록 허용한다. 실험 그룹을 배양하고, 필요한 곳에 황금 씨앗을 뿌리고, 젊은 사람들에게 창조적이 될 것을 권유한다. 이렇게 하면서도 본류 조직의 정연한 흐름은 유지하는 것이다.
  •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장 큰 문제는 대표적 코끼리인 정부의 유연성(연금술)이 없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중앙 싱크탱크를 가지고 있으나, 행정부 내에서 연금술사를 양성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는 그들에게 낯설기 짝이 없다. 공무원들은 태생적으로 리스크를 싫어한다.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이 성공과 모험에 대한 포상이라기보다 실수에 대한 징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누구든 그렇게 소심한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 이들 벼룩 또는 연금술사들은 돈은 중요한 사항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남들이 자신의 창조 정신과 추진력으로부터 소득을 올리는 꼴을 곱게 보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코끼리들은 성공이 입증된 연금술사들의 결과를 쉽사리 사들일 수 있었다. 그들은 때로는 연금술사를 내쫓고 그의 제품을 독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연금술사들은 그런 식으로 쫓겨났기 때문에 새로운 발견을 또다시 해낼 수 있다.
  • 일본의 거대한 코끼리인 소니와 마쓰시타가 할리우드에 진출해 컬럼비아 픽처스와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사들인 다음 크게 당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곳은 벼룩과 연금술사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연예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배리 딜러는 영화 산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회사의 소유주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영화 제작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각 개인의 에너지, 특징, 창조 정신이다. 그 나머지는 소음에 불과하다.” 다른 코끼리들도 이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 이제 대기업들은 사회적 책임을 재규정해야한다. 이익금의 일부를 떼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회사가 이익을 얼마나 올리고 그 수익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궁리하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회사를 얼마나 정직하게 운영하며 서로 다른 이익단체의 요구를 얼마나 균형 있게 들어주는지가 중요하다.
  • 대기업의 이런 움직임은 직원들이 주주의 이익을 늘려주는 것 외에 자신의 시간과 노동에 대한 보람을 느끼고자 한다는 강력한 표시다. 자신의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일한다고 느끼고 싶은 것이다. 회사들이 약간의 자선 행위로 명성을 살 수 있었던 시대는 지났다. 사람들은 이제 회사들이 돈을 얼마나 버는지가 아니라 그 돈을 ‘어떻게’ 버는지에 집중한다.
  • 내가 설혹 어떤 아이디어를 당신으로부터 사들인다고 해서 그것을 파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것을 여전히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계사들이 잘 알고 있듯이 지적 재산의 가치를 계산하는 유일한 방법은 회사의 시장 가격에서 물질적 자산의 가치를 빼는 것뿐이다. 어떤 물건을 다른 물건의 반대 개념으로 규정하는 것은 흡족한 방법이 절대 아니다. 그런 방법은 그 물건이 실재하지 않는 것, 혹은 기계 속에 존재하는 유령 같은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비가시성 때문에 이 새로운 형태의 재산권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안겨주고 있다. 볼 수도 없고, 셀 수도 없는 것에 어떻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품질관리의 대가인 W.에드워즈 데밍이 말한 것처럼 기업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중 97퍼센트는 셀 수 없는 것들이다.
  • 하지만 이런 선의의 시도들은 데밍이 옳았음을 증명해주는 것으로 끝났다. 정말 중요한 것은 숫자로 표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 따라서 새로운 코끼리들이 자체 연금술사를 양성할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는 지금, 지적 재산은 그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다. 특히나 연금술적 아이디어를 내놓은 사람은 거기서 발생한 결과의 일정 부분을 자신의 몫으로 요구할 것이다. 그들은 시간이란 기술을 제공하지 않고 오로지 돈만 내놓은 주주에게 모든 이익이 돌아가야 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고용 계약을 맺었다고 해서 내가 고용 기간 동안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반드시 고용주 것이어야 한단 말인가?
  • 나는 연금술사들이 점점 더 저술가인 나처럼 변해갈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로 발생한 소득 흐름에서 일정 부분을 주식이나 옵션의 형태로 요구할 것이다.
  • 한편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지식이 판매 가능한 가치임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시간당 계약인 임금이나 봉급을 받고서 그 지식을 팔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익의 일정 비율을 보장하는 수수료나 로열티를 요구한다. 지불된 시간에 비례해 주어지는 돈이 봉급이라면 수수료는 지불된 시간과는 상관없이 생산된 일에 주어지는 돈이다.
  • 피고용자(직원)는 임금을 받는다. 프리랜서는 수수료를 청구한다. 프리랜서는 자신의 노하우로 만들어낸 결과물을 판매할 뿐 노하우 자체를 판매하지는 않는다. 반면에 직원은 일의 결과가 아니라 시간을 회사에 팔아버림으로써 그 시간을 이익으로 전환시키는 노하우까지 암묵적으로 함께 팔아버리는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프리랜서들이 자신의 지식을 철저히 통제하기 위해 회사를 상대로 수수료를 청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의하기 애매모호한 지적 재산을 소유한 벼룩들이 그것을 코끼리들에게 임대하는 일이 갈수록 더 많아질 것이다.
  • 회사가 그런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려면 개인들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것이 중요하다. BBC 사장으로 영입된 존 버트는 봉급을 받는 임원이 아니라 자기 소유의 개인회사 명의로 고용 계약에 서명했다. 그는 시대를 앞서갔다. 기업계와 사회는 그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독특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앞으로 10년 이내에 이런 방식으로 고용 계약을 맺을 것이다.
  • 다윈주의적 세계관 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회사는 소규모 운영 단위, 유연한 위계제와 리더십,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팀 프로젝트 방식으로 움직여야 한다. 또한 다양성을 강조하지만 높은 신뢰감과 참여의식을 배양해야 하며, 자기비판적이지만 개인의 성취를 인정하는 보상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 회사들은 이런 회사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 사람들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벼룩이 되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 그런데 회사라는 조직 탓에 논리적 상자(조직도표상의 보직) 속으로 본능을 우겨넣었고, 학교 교육으로 인간성보다 이성을 더 존중하도록 설득당했다. 하지만 이제 코끼리들은 경제적 압력 때문에 직원들을 개인적 경제 단위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점차 나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회사들은 이제 회사 운영을 인간성의 흐름에 발맞춰 모든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 사태가 이런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국면이 전환되어 지적 재산권의 소유자인 핵심 직원들이 회사를 인질로 잡고 보상금을 요구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 빌 게이츠가 솔직히 시인했듯이 기본적 건강 유지나 영양 상태 등에 비한다면 보편적인 인터넷 접속은 우선순위 리스트에서 한참 처진다. 제네바에 있는 어떤 민간 금융회사가 <이코노미스트>에 다음과 같은 광고를 냈다. 그 회사는 “우리는 지난 2백 년 동안 온라인으로 일해왔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의 고객과 직접 상담해왔습니다.” 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는 가장 최신의 데이터와 의사소통 기술을 마스터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술적 개혁은 자신감, 인접성, 반응성 등 인간관계의 가치를 강화하는 보조수단이며 이러한 인간관계야말로 우리 사업의 핵심인 것입니다.”
  • 이 광고의 숨은 뜻은 매우 중요하다. 크게 볼 때,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이미 발생한 것을 강화하는 것일 뿐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 정규 직장은 대부분 쉰네 살에서 끝나므로 많은 사람들이 그 후 30년이 넘는 은퇴 생활을 해결해야하는 것이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개인연금이나 국민연금 그 어느 것도 이런 긴 세월 동안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이제 엄연한 진실은 이런 것이다. 사람들은 정규 직장의 생활이 끝난 후에도 일을 계속해야 하는데 그것은 정규 직정의 연속이 아니라 이런 일, 저런 일을 그러모아 만든 ‘포트폴리오’ 일이 될 것이다. 일은 사람들을 건강하고 유익하게 만들고 또 부모의 은퇴 생활 지원이 버거운 자녀들의 부담을 덜어준다.
  • 과거의 코끼리 기업들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으나 이제 아주 날씬해졌고 다양한 벼룩들, 소규모 독립 공급 업체, 하청 업체, 컨설턴트, 신규 업체 등에 둘러싸여 있다. 회사 내부를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책임지고 자신의 특별한 재능을 개발하며 자기 자신을 프로젝트와 팀 리더에게 판매하도록 요청받는 개인들이 있다. 이런 형태의 세계에서는 회사 안에 있든 혹은 바깥에 있든 독립된 재능을 바탕으로 사고하고 행동해야 할 필요가 있다.

독립된 생활

  • 나는 독립한 첫해 각종 대회나 회의의 참석자 명단에 오른 내 이름 옆자리에 회사명이 쓰여 있지 않고 텅 비어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꼈다. 나는 회사의 대표자가 아니라 나 자신을 대표하는 독립된 인격이었다. 그러나 연말 송년회 파티가 열리는 시점에 이런저런 부서의 초청장이 거의 날아오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분명해졌다.
  •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그런 초청장이 그리웠다. 그것은 사회적 배제에 의한 죽음이었다. 초청장을 아예 못 받는 것보다는 초청을 받고 파티에 갈까 말까 망설이는 편이 나은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자문했다. 만약 내가 아무 곳에도 소속되지 못한다면 나는 과연 남들에게 가치 있는 사람일까? 사내 파티가 실존적 고뇌를 가져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공동체의 현대적 상징 중 하나임은 분명했다. 그런 공동체가 이제 나에게는 없는 것이었다.
  • 새로운 생활이 따라온다면 과거의 생활을 청산한 일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나는 회사에 다닐 때 갇힌 느낌이 들었고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수도사가 될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태생적으로 무리를 이뤄 사냥을 하고 부족 가운데에서 살게 되어 있는 것이다. 회사의 울타리를 떠났으므로 나는 다른 소속처, 다른 사냥 동료를 찾아야 했다. 나 나름대로 어디엔가 속하는 방식을 찾아야 했다.
  • 이런 일은 청년이든 노년이든 모든 벼룩에게 적용된다. 어딘가에 속하고 싶은 마음과 자유롭고 싶은 마음 사이의 갈등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 독립 생활은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채택할 생활방식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공동체에 자신의 시간을 적극적으로 투자하거나 연금술사들처럼 자신들의 공동체를 창조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공동체의 한 부분이 될 수 없다
  • 그 공동체의 어떤 부분은 우리의 일에서 오고 또 어떤 부분은 우리의 개인적 생활로부터 온다. 우리와 가까운 이들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사람들이고 또 우리가 깊은 책임을 느끼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개인적 네트워크는 가만히 내버려둬도 저절로 돌아가는 시스템이 아니다. 계속 손을 보아야 한다. 다행히도 나의 아내는 사회적 브로커와 파트너 노릇을 잘해준다. 타고난 벼룩인 그녀는 회사 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서 사업과 개인 생활으 공동체를 스스로 창조해야 한다고 생각해온 사람이다. 그녀는 폭넓고 다양한 친구들과 끊임없이 접촉해왔다.
  • 나는 혼자 있으면 전화를 걸기보다는 기다릴 사람이다. 전화를 걸어 사람을 초청하는 일은 사회적 에너지나 자신감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전화를 받는 상대가 그런 초청을 거절할까봐 두렵고, 상대가 나를 기억하지 못할가봐 무섭다. 내 마음대로 한다면 나는 아마도 클럽이나 협회에 가입할 것이다. 그래서 대회나 회의에 참석하고 클럽 총무나 교회의 집사로 선출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렇다고 늘 남들의 이익만을 의중에 두고 있지는 않다. 나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무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 내가 공동체를 그리월 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나는 그 다음의 긴장도 예상하지 못했다. 내 마음대로 미래를 창조하고 나의 목표를 설정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나는 나의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진지하게 생각했다.
  • 나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려면 직감에 따른 반응 이상의 것, 그러니까 전략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어떤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그것은 사명감이나 목적의식에서 흘러나와야 한다. 목적의식이 없다면 나는 전에 만나보았던 많은 기업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 회사들은 그저 살아남는 것만이 목적으로 내년까지만 무사히 버티자는 생각밖에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단지 살아남는 것은 인생의 충분한 목적이 되지 못한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창조하고 싶은 것에 대한 꿈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부자가 되고 싶다, 아이를 많이 낳고 싶다, 행복해지고 싶다 등의 막연한 꿈이라면 그것은 꿈이라기보다 희망에 가깝다. 열정은 막연한 희망으로부터 생겨나지 않는다.
  • 만약 아내에게 중년에 왜 사진작가가 되려고 마음먹었느냐고 물어보면 아내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건 내가 늘 꿈꾸어오던 것이었어요. 싸구려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 말이에요.” 부끄러운 일이지만 22년 전 나는 아내의 그런 소망을 취미 정도로 여기고 그것을 격려해줄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꿈과 열정은 수면 아래에서 꿈틀거리면서 한시라도 밖으로 나올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 한편 열정은 자기 자신의 것보다 남의 것이 훨씬 잘 보인다. 나는 나 자신이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역할을 맡아서 연단 위로 올라가지 않는 한 평소에는 냉정하고 침착하며 수줍고 말이 없는 사람이다. 이런 나에게도 꿈이 하나 있었고 그것은 조용한 열정으로 성숙해갔다. 비록 여러 해 동안 꿈을 감추고 기업의 중역이 되려 애써왔지만, 내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 과정에서 내가 타고난 교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의 첫 번째 책이 교재가 된 것은 필연적인 일이 아니었다. 나는 소설이나 희곡을 써보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그런 분야에는 열정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쓰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모든 일이 그렇듯 좋은 아이디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 운 좋은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일찍 발견한다. 나는 열다섯살에 이미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사람, 학교에 다닐 때 사업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처럼 주관이 뚜렷한 사람을 부러워했다. 반면 나의 꿈처럼 반쯤 잠겨 있는 꿈은 인생의 다른 측면을 경험하게 만든다. 나는 중간에 그만둔 회사 생활에 아무런 후회도 없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어떤 사람들은 우연히 자신의 열정과 만난다.
  • 그래서 자신의 열정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조언한다. “실험을 해보라. 마음에 드는 것을 뭐든지 해보라.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열정으로 성숙할 때 까지 그것을 당신 인생의 중심으로 여기지 마라. 그렇다면 그것은 오래가지 못할 테니까”
  • 세 번째 긴장은 나의 배경을 봤을 때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프리랜서로 무슨 일을 하든 그 사람의 능력을 보장하는 것은 그의 최근 일 혹은 프로젝트뿐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과거 명성이나 경력은 아무런 보장이 되지 못한다.
  • 나는 동료 작가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현재 새로운 책을 집필하고 있는데 새로운 분야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기가 정말 어렵군요.” 그가 대꾸했다. “그래요? 대부분의 작가는 같은 흐름이나 같은 스타일의 책을 계속해서 쓰면서 제목만 다르게 붙이지 않나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나 역시 그 동료 작가가 말한 대로 되고 말았다. 하지만 나중에 그것이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면서 자신의 견해를 급격하고 빈번하게 바꾼다는 것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과거의 아이디어를 계속 다루면서 새로운 현실에 비춰 그것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다른 유형의 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 이제 아무런 소속도 없이 내 시간을 자유롭게 통제하는 상황에서 나는 그 모든 것을 혼자서 해내야 했다. 게다가 그런 일을 한다고 누가 봉급을 주는 것도 아니다. 나는 우선 경쟁자들이 쓴 책들을 모조리 읽어치우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얻은 결론은, 경영서는 좋은 개념들로 가득 차 있으나 읽기에 너무 따분하다는 것이다. 나는 진취적인 사업가들에게 내가 해준 조언을 떠올렸다. ‘남보다 더 잘하려고 하지 말고 남들과 다르게 하라’. 당시 나는 내 차의 트렁크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영서들, 주로 미국 대학교의 교재들을 가득 실어놓고 있었다. 하지만 그 책들은 재미가 없었다. 내가 제기하는 많은 질문에 답변을 주지 못했다. 그 책들은 사람의 따듯한 인정을 숫자로 바꾸어놓았고 열정과 욕망을 필요의 위계질서로 치환해놓았다. 내 책이 다른 경영서보다 우수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확실히 다른 것은 분명하다.
  • 남들보다 낫기보다는 남들과 달라야 한다. 이 화두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나는 새로운 통찰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으려면 자신의 전문지식 분야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회사들을 상대로 종종 지적하듯이 진정한 혁신은 해당 산업 바깥에서 온다. 회사 내부에서 오는 것은 친숙한 것의 변형일 뿐 진정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나는 이 통찰이 남보다 낫기보다 다르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사물을 새롭게 보거나 새로운 무언가를 보기 위해 때때로 낯선 세계를 거닐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자신에게 그것을 강요해야 한다.
  • 미국 학자 도널드 숀이 쓴 책 <개념의 재배치(The Displacement of Concepts)>를 발견했다. 그 책은 과학 속의 창의성을 다루고 있었다. 숀의 주장은 이랬다. 과학의 획기적인 돌파구는 생활 속의 어떤 분야에 있는 아이디어를 빌려다가 생활의 다른 분야에 하나의 비유로 적용할 때 발생한다. 그렇게 한번 해보라. 그러면 낯선 사물을 새로운 방식으로 볼 수 있고 또 기존의 데이터들을 새롭게 연결시켜 새로운 경지로 들어가는 문을 열 수 있다. 프랜시스 크릭과 제임스 왓슨은 이중 나사선이라는 생활 속의 모형을 빌려 유전공학에 하나로 비유로 적용해 DNA의 신비를 풀어냈다.
  • 이제 그 낯선 세계가 나를 초청하고 있었다. 그 때까지의 인생은 남들을 쫓아가기 위해, 남들보다 더 잘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던 시간이었다.
  • 뭔가를 남보다 더 잘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하려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원칙이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세계로 걸어 들어가서 보고 듣고 살펴라. 그런 다음 그런 견문을 당신의 세계를 새롭게 조망하는 수단으로 삼고 그 새로운 개념을 부지런히 사용해 의식의 일부분으로 만들라. 만약 그 개념이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재빨리 내다버리고 다른 곳에서 다시 찾도록 하라.
  • 내가 남들에게 뭔가 중요한 것을 전달해 그것을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과연 남들이 내 얘기를 들어주기나 할까 싶은 회의감 사이에서 힘든 외줄타기를 해야 한다. 나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위로한다. 내 얘기가 싫은 사람들은 라디오를 끌 수 있고, 내 책을 집어던질 수 있고, 강연장에서 걸어 나갈 수 있다. 이처럼 강연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엄청난 자기 신념을 끄집어내야 한다. 말이 좋아 자기 신념이지 사실상 은밀한 오만인 것이다.
  • 내 경험에 비추어볼 때 그 힘든 외줄타기의 느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만약 그 느낌이 사라진다면 그게 더 걱정일 것이다. 자신감 속에서 싹트는 회의감, 나아가 타당한 회의감은 사람을 정직하게 만든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어떻게든 해야 한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회의가 들든 말든 내가 아닌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매우 불만족스러운 일이다.
  • 나는 신혼 때 아내와 나눈 대화를 아직도 기억한다. 어느 날 저녁 아내가 물었다.
    • “여보, 당신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자랑스러워요?”
    • “좋아요, 그런대로”
    •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어때요. 특별한 사람들이에요?”
    • “좋아요, 그런대로”
    • “그럼 당신 회사 셸은 좋은 일을 하는 좋은 회사인가요?”
    • “응, 좋아요. 그런대로”
    아내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는, ‘좋아요, 그런대로’의 태도를 가진 사람과 한평생을 보내고 싶지 않아요.” ‘좋아, 그런대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삶은 단 한 번뿐이므로 그저 근근이 견뎌나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인생의 목적은 결국 무엇인가? 이 질문은 여전히 나를 따라다니는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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