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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환상

퇴사를 하면서 했던 가장 큰 기대 중 하나는 바로 시간이 많고 그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몇 달 동안 길게 여행을 갈 수도 있을 거 같았고 살면서 한번도 해보지 않은 흥미로운 무언가를 해볼 수도 있을 거 같았다. 백수로 지낸지 이제 세 달이 지나간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표현엔 환상이 들어가있다고 생각한다. 대신 ‘시간을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면서 쓸 수 있다’라는 표현이 실제와 괴리감이 적은 거 같다. 시간이 남아돌 때 갑자기 길게 몇 달 여행을 하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한번도 해보지 않은 무언가를 해보고 싶지도 않았다.

세 달간 행동을 돌아보면 그 남는 시간들을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꾹꾹 채워 넣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매일 하다보니 어느새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다보니 어느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은 거 같은데 왜 이렇게 바쁜 거 같지?

나에게 자유가 있다면 그건 루틴이라는 시간표를 미세조정하는 것 정도이다. 어떤 날은 항상 하던 일을 적게 하거나 아니면 하지 않고 그 시간에 빈둥대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것도 길어야 하루 이틀이지 이내 다시 루틴으로 돌아간다.

결국 시간에 대한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내가 어떤 것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여백의 시간을 만든다고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하루라는 빈 타임라인을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채울 수 있을 때 행복감과 만족감을 얻는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백수로 생활한다고 항상 행복한 것도 아니고 최대치의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시간을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채워넣을 수 있기 때문에 꽤 높은 행복감을 가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앞으로 직장인이나 프리랜서 혹은 창업과 같이 누군가와 사회적 계약을 맺고 일을 할 때 그 일에 대해 내가 충분히 의미를 가질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된다면 백수 이상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것과 비슷한 내용으로 ‘리프레시 휴가를 보내고 나서’라는 글에 올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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